'한국속중국'이라불리는대림동조선족타운주민들은나름의모습으로설맞이에한창이었다. 왁자지껄한모습한편엔취업비자만기와불경기로설을앞두고대림동을떠나는움직임도교차했다.
◇같으면서다른설맞이 '대림스타일'
"조선족들은차례지내는거잘몰라. 설날엔그저가족친척들모여서맛있는거해먹지. 여기한국와서는술, 고기, 중국음식사먹고. 특별히명절이라고먹는건물만두" 2대째중국식품점을운영하는조선족교포 1세박찬태씨(86)는조선족의설날음식이한국과완전히같지도, 다르지도않다고설명했다. 떡국을먹기도하고부추, 샐러리, 강낭콩, 돼지고기, 포도주뿐만아니라후주(Fuzhu·두부의일종) 등한국에서구하기어려운식재료도구해서음식을한다. 피망에찹쌀을넣어서만드는 ‘피망순대’ 등대림동의설날음식은가지각색.
대림동에중국식품점만있는건아니다. 한할인마트는명절을앞두고몰린중국인들로발디딜틈이없었다. 이날하루매상은평소의두배인 5000만원이상. 한국인운영자이현순씨(55, 녀)는 ‘놀땐놀고쓸땐쓰는’ 것이 ’대림동스타일’이라고했다.
이곳에서 30년째부동산을운영중인한국인김화기씨(59)도 “이곳거주민의 80%가중국동포이기때문에명절이면이곳으로모여든다"며 "자유분방하게벌어서고향사람들끼리뭉쳐서좋아하는거먹고마시고그러는게이곳의설"이라고했다.
련휴를하루앞둔 7일대림동곳곳은대낮부터축제분위기가얼큰하게무르익고있었다.
◇이곳은내집…떠나야하는사람들도
조선족들이대림동에정착하기시작한건 1990년대중반. 현재는많은이들이가족단위삶을꾸리게됐다. 한국에서 10년가까이거주한장기체류자들이많아지면서이곳을더이상 '타향' 이아닌 '내집'처럼느끼는사람들이늘었다.
대림동에서 10년째세탁소를운영중인조선족이수미씨(55·녀)는두자녀와남편, 오빠네가모두한국에서같이살아딱히중국이그립지않다. "우리집은설날에떡국도끓여먹고. 여기있다보니여기풍습따라갖고비슷해요. 우린여기하고비슷하게살아요. 중국에선 15일쉬지만빨간날 3일쉴거예요."
5년전일가족이옮겨와화장품가게를운영중인천모씨(30·녀) 도 “어렸을때갖고놀던색색가지이쁜폭죽"이그리운것을제외하곤특별히향수병이없다.
어린자녀들이자라날구로구의환경이좋아지는게새해소망이다. 양꼬치집주인안모씨(54·녀)도 2년넘게중국집에못갔지만돌아갈생각이없다. 얼마전중국에있던아들마저서울대대학원에입학하러들어왔다.
하지만이들모두가대림동을 ‘진짜’ 집으로삼을수있는건아니다. 겉보기에북적이는대림동곳곳에선 '떠날걱정'과 '떠난사람걱정'이새어나왔다.
2007년부터발급된 4년 10개월짜리방문취업비자(H2)가대거만기돼수만명이중국으로빠져나간것. 중국인들을상대로하는가게들이타격을받았다고했다.
"1만명인가교포들이중국으로돌아갔어. 사람이없어. 1년있다가오거나, 다못오나봐.“
이곳려행사직원에따르면설쇠러중국에간동포들중엔일자리가없어 3월까지돌아오지않는이들도많다. 그나마도 55살이상은재입국취업이불가능하다.
◇조선족 50만명시대…한국의자세는
“경기가살아나돈많이버는게소망이에요. 우린중국에서도소수민족이고여기와도여기사람취급안해주기때문에. 그래도살기는한국이좋아요. 능력껏하는것만치벌수있고. 거기개방많이했지만아직여기가버는게더낫지요. 중국은사람많아갖고쉰넘으면어디가서취직못해요" (이수미·55·녀)
조선족들이서울전역에 25만명, 대림동일대에 1만5000여명모여고유한문화를형성하며삶을꾸리고있지만많은이들은여전히 ‘주민’으로인정받지못하는이중적인현실에처해있다.
이들은장기체류를막는 ‘4년 10개월제한’을원망하지만, 한국정부는다른외국인근로자들과의형평성을고려하지않을수없다는립장이다.
김형연출입국관리사무소체류관리과계장은 “원칙적으로는다시못들어오는건데특별히절차를간소화하고재입국의길을열어준것”이라며 “방문취업비자로 5년가까이일할수있는건중국동포밖에없다”고했다.
이들을받아들이는한국의태도도이중적이다. 박세훈국토연구원연구위원은 “조선족은외국인이지만외국인이아닌독특한위치에있다”며 “이들문화가기본적으로우리랑같다고보니정부의관심과지원이오히려타외국인에비해적어역차별을당한측면이있다”고지적했다.
(출처-한국미다어 )